누가복음 15장 20절을 읽을 때 우리는 예수의 원래 청중들에게 거의 충격적이었을 한 몸짓과 마주한다. 1세기 유대 문화에서 재산과 지위를 가진 연장자가 공공장소에서 달리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런 행동은 존엄과 지위의 상실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적 세부는 아버지의 움직임을 더욱 드러나게 한다. 예수는 그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낼 것임을 알고 있었다. 복음서는 아버지가 아직 멀리 있는 아들을 보고 긍휼로 충만하여 달려가 그를 크게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고 기록한다. 중요한 것은 단지 껴안음만이 아니다. 전적인 주도성, 곧 보고, 긍휼을 느끼고, 달려가 껴안고 입맞추는 모든 것이 아들의 어떠한 고백이나 공로의 표명보다 먼저 일어난다. 이 순서는 신적 용서가 회복의 전제라는 생각을 해체한다. 여기서 용서는 회복에 앞서며, 회복은 화해의 길을 연다. 예수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 위해 이 비유를 들었으므로 각 문화적 세부는 신학적·목회적 가치를 지닌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몸짓을 단순한 인간적 감상주의로 해석하지 않고 아버지의 능동적 사랑의 계시로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