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는가?

욥기 9:1-2의 본문은 깊은 고통에서 말하는 한 인간을 보여준다. 욥은 '분명히 내가 이같이 알거니와'라고 말하는데, 그 확신은 이론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다. 동시에 그는 고뇌 섞인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으랴?' 이러한 확신과 당혹의 이중적 역학이 빌닷에 대한 그의 응답의 어조를 규정한다. 욥은 하나님의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무능함으로 그것과 대면한다.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그는 자신에게 도달할 수 없을 속성들을 열거한다. 그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인간의 연약함 사이의 긴장을 보게 한다. 이 이야기는 쉽게 답이 없는 고난을 겪을 때 우리로 하여금 유사한 질문에 직면하게 만든다. 욥을 읽는 것은 성경이 인간을 하나님 앞에 어떻게 드러내는지 주목하게 한다.

그의 응답에서 욥은 창조와 역사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위엄을 암시한다. 그는 말씀은 능력 있고 그 행위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의 의로움과 인간의 논쟁에 굴복되지 않는 그 위대함을 인식한다. 또한 산을 들추고 별들을 움직이며 심판을 지탱하시는 전능하심을 본다. 이러한 속성들을 인정하는 것은 지적 훈련이 아니라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만남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하나님과 타락한 우리 상태 사이의 도덕적 거리를 분명히 한다. 때로 하나님의 주권은 즉각적인 위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심연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성경은 그 같은 주권이 소망을 위한 확실한 기반임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이성보다 그의 지혜에 의지하도록 우리를 준비시킨다.

욥은 하나님 앞에 스스로 의롭게 설 수 없는 인간의 불가능성을 인정하며, 그 정직함은 우리를 성찰로 이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무능함을 최종 운명으로 남기지 않고 만남의 지점으로 놓는다. 그리스도는 욥이 자신의 불충분함을 인정한 그 자리에 이르러, 우리가 행위로 얻을 수 없는 의를 제공하신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가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성취됨을 드러낸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공로가 아니라 그분의 완성된 사역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 이 진리는 욥의 절망을 회개의 실제적 방향성과 의존으로 변모시킨다. 우리가 스스로를 의롭게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능히 하실 구주를 부르짖게 한다. 목회적 경험에서 겸손과 신뢰의 그 혼합은 신자의 삶에 점진적 성화를 낳는다. 이처럼 욥의 고백은 우리를 구속의 은혜를 받도록 준비시키는 학교가 된다.

고난의 신비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솔직히 말하고 그의 영광 앞에 겸손히 서는 욥의 본을 따른다. 즉각적인 답을 가장하지 않고 의심과 소원을 드러내는 진실한 기도를 실천하라. 너를 지탱해 주는 공동체에 머물고 그리스도에 대한 의존을 고백하며 말씀으로 교정받게 하라. 자족을 회개하며 네 마음을 살피고 오직 예수께서 주시는 의를 받아들여라. 일상에서 그 신뢰를 사랑과 순종과 섬김의 구체적 행위로 옮기라. 질문이 계속될 때에도 하나님의 주권이 네 고통을 아시는 구속자의 부드러움을 무효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인간의 설명이 부족할지라도 복음의 약속이 네 소망을 붙들게 하라. 이해할 수 없는 가운데서도 주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담대히 행하라. 위로하노니: 그의 의를 신뢰하고 그의 은혜에 기댈지어다. 겸손하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계속 그를 찾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