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장 3절에서 세례요한은 신적 계시의 그림자 속에서 목자 같은 물음을 던진다: 메시아가 여기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찾아야 하는가? 그 답은 책망이 아니라 그날 요한이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 임재하신 성령, 그리고 구원의 완전한 기름부음을 받은 아들을 바라는 믿음으로의 초대이다. 요한의 질문은 한 사람 안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신비에 기댈 우리의 경사로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 우리는 예수를 인식하는 것이 우리의 교만한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열린 믿음의 시각과 그를 왕과 구주로 기름부르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시작됨을 상기한다.
요한은 단순히 한 사건을 관찰한 것이 아니다; 그는 하늘과 땅이 침례의 물에서 만나는 거룩한 만남의 증인이었다. 아버지의 선언, 성령의 강림, 그리고 아들의 정체성은 그가 누구인지 확인시켜 준다—세상의 죄를 없애는 하나님의 어린양, 우리의 humanity에 들어와 이를 구속하신 분. 겸손으로 요한은 뒤로 물러나 예수를 보게 하였고, 그 순간 기독교 생활은 경외로 가득 찬 신뢰로 재초점이 맞춰진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경배하며, 만왕의 왕이 은혜, 자비, 진리로 하나님의 통치를 세우러 오셨음을 인정하는 것.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의심 어린 확신이 아니라 겸손한 경외로 예수께 다가가는 법을 배운다. 자신보다 큰 분을 세례주로 삼고 자신의 역할을 예비자로 인정했던 요한의 겸손은 우리에게 우리 자세를 점검하도록 초대한다: 우리도 그리스도께 다가갈 때, 그분이 우리의 날들 속에서 점차적으로 증가하실 수 있도록 낮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예수의 세례는 우리 영적 형성의 모범이 된다: 아버지께 우리의 계획을 항복하고, 성령의 확신을 구하며, 구하는 구원을 주시는 아들의 사명에 우리의 삶을 정렬하는 것. 믿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증거—하나님의 예수에 대한 증거—로 돌아가 신뢰와 순종으로 다시 이끈다. 그분 안에서 약속이 성취됨을 안다.
그러니 오늘도 용기를 내라: 예수를 향한 신앙을 통해 말씀하신 그 동일한 하나님이 너를 향해 말씀하신다. 너희는 예수가 기름부음 받은 자이자 죄를 이기고 은혜 안에 통치하는 구주라는 확신 속에서 활동하라는 초대에 응하라. 요한이 보여준 그 조용한 경외와 같은 삶을 우리도 살며, 다른 이들을 예수께로 이끄는 매일의 선택을 하고, 아버지의 계획은 선하고 성령의 임재가 항상 함께하며 아들과 함께 모든 시련과 갈망을 넘기게 된다는 굳건한 확신을 가지자. 이제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라, 그리스도 안에서 쉬지 않고, 겸손으로 그를 증언하며, 그의 왕국의 평화 속에서 걸으며 그가 모든 것을 자기에게 모으실 때까지 기도와 소망으로 살아가자.